
이 백화점에는?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공간이 있는데,?VIP 라운지입니다. 누가 VIP가 될까요? 지난해 신강에서만 샤넬 백, 불가리 목걸이 등 주로 명품을 사는데 5000만원 이상을 쓴 30대 여성은 VIP 플래티넘 등급에 들었지만 제휴 카드로 결제하지 않은 금액이 빠져 골드를 받았습니다. 이 등급부터 앉은 채 커피 등을 서비스받는 라운지를 이용할 수 있는데 거의 빈 자리가 없다네요.
백화점에서 1억원을 쓴다??0.1%에 드는 찐부자가 아니면 상상하기 어려운 액수입니다. 도대체 이들만 들어가는 곳에선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는 걸까요. 한 해 1억원 이상 구매한 고객만 받는 ‘어퍼하우스 라운지’를 가봤습니다.

이게 끝이 아닙니다.?1억원을 써도 입장 불가인 라운지도?있습니다. 구매액 최상위 딱 999명만 받는 ‘트리니티 라운지’. 이용자들 사이에선 2억5000만원가량은 썼을 것이란 말이 나옵니다.
의자에 금칠이라도 돼 있는 게 아닐까 하며 문을 연 순간?예상을 깨는 풍경이?보였습니다. 다른 라운지와 분위기가 달랐습니다. 갈수록 심해지는 양극화의 한쪽 극단 같은 ‘금단의 구역’으로?들어갑니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에 사는 30대 여성 A씨는 지난해 결혼 준비를 신강에서 했습니다. 혼수부터 예물까지 4500만원 정도 썼습니다. VIP 플래티넘 등급이 됐고, 7층 퍼스트 라운지에 갈 수 있게 됐습니다.
" 5성 호텔급의 접객 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인테리어랑 차분한 분위기도 흔한 커피숍과 비교할 수 없어요. 라운지를 많이 찾는 편이고, 백화점을 계속 이용하게 되는 큰 이유예요. "
커피와 다과가 무료 제공되고, 브런치 메뉴를 돈 내고 주문해 즐길 수 있습니다. 이 정도는 백화점에서 쓴 거금에 비하면 큰 혜택이 아닌 것 같은데도 주말이면 줄을 서 입장을 기다린답니다.

VIP 멤버십은 전년도 400만원 이상 고객부터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무료로 커피 등 음료를 제공하는 멤버스바가 가장 낮은 단계입니다.
6000만원 이상 VIP 고객에게 개방되는 ‘다이아몬드 퍼스트 라운지’는 10층에 있습니다. 들어가자마자 피에르 알레친스키, 알렉스 카츠부터 이우환, 하태임까지 국내외 최고 작가들의 작품이 걸려 있습니다.

다이아몬드 퍼스트는 브런치를 주문하는 고객들이 많은데 감자수프, 쉬림프 샐러드, 쿨라텔로&모짜렐라, 프렌치 토스트, 브렉퍼스트 같은 다양한 브런치 메뉴가 있었습니다. 사실 메뉴 자체가 특별하고 고급스럽진 않습니다.?그보다?우아하고 조용한 분위기, 간격 넓은 테이블, 지인들을 초대해 특별하게 대우받는 느낌으로 식사할 수 있다는 게?장점 같았습니다.

신세계강남엔 1층과 2층 사이 ‘메자닌 층’이 있습니다. ‘넘버 투’에 해당하는 VIP라운지 ‘어퍼하우스’가 이곳에 있습니다. 소비 금액이 연 1억원 이상인 고객들에게만 문이 열립니다.
120평에 달하는 어퍼하우스 내부로 입장하니 유럽 미술관에서 볼 법한 작가들의 그림이 곳곳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작품에 따라 수백억, 수천억원의 낙찰가를 기록하는 데이비드 호크니와 데미안 허스트 등의 그림을 이곳 VIP들은 무료로 감상합니다.

한쪽 바에선 목요일마다 초청되는 바리스타가 드립 커피를 내려줍니다. 라운지마다 주문할 수 있는 다과의 종류는 조금씩 다릅니다. 어퍼하우스에선 떠먹는 홍시, 피칸파이, 코코넛, 약과 타르트 같은 메뉴가 눈에 띕니다. 가장 인기 있는 건 애프터눈 티세트라고 관계자가 귀띔합니다.

‘나는 일반 소비자와는 다르다’는 것을 확인받는 디테일. VIP 서비스의 핵심일 겁니다. 그래서일까요. 라운지가 한 급 높아질수록 미세한 차이를 둡니다. “아랫급 라운지에선 커피잔을 테이블에 그냥 놔드려요. 상위급에선 쟁반에 플레이팅 해서 드리고요.” 백화점 관계자의 말입니다.

" 한번 VIP를 경험하면 이를 유지하려고 애씁니다. 연말 백화점으로 걸려오는 상당수 문의가 VIP 등급을 유지하려면 앞으로 얼마를 더 써야 하느냐는 내용이에요. "
지난해 6000만원을 썼다는 30대 여성의 전언입니다.
부자들의 세계를 엿본 김에 ‘끝판왕’까지 가봤습니다. 직전 해 신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을 쓴 고객 딱 999명만 들어갈 수 있는 라운지‘트리니티’입니다. 백화점 3층에 내려 까르띠에, 피아제 매장을 지나자 입구가 나옵니다.
‘넘버 원’ 찐부자들의 공간은 수수했다
대기업 직장인의 웬만한 연봉보다 많은 돈을 백화점에서 쓴 이들이 찾는 트리니티 라운지에 들어서니 앞서 본 어퍼하우스나 다이아몬드 퍼스트 라운지보다 오히려 수수했습니다.
베이지 톤 테이블과 소파가 넉넉히 놓여 있을 뿐 어퍼하우스의 항공기 일등석 같은 특별 공간도, 다이아몬드 퍼스트 라운지에 있던 명품 진열대도 볼 수 없었습니다.
명품 브랜드 로고를 감춘 올드 머니룩이 유행하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함이나 과도한 장식을 상위 0.1% 부자들은 선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단순하면서도 차분하게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를 선호합니다.
이렇게 꾸민 이유랍니다.
다과 메뉴에서 삼색 경단과 귀리 머핀, 흑임자 벤아망이 눈에 띄네요. 백화점 측은 정보를 공개하지 않지만, 트리니티 라운지의 분위기를 보니 어느 정도 나이가 있는 고객의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어퍼하우스나 다이아몬드 퍼스트 라운지가 오전 11시를 넘기며 VIP 고객들의 발길로 분주해진 데 비해 트리니티 라운지는 매우 한산했습니다. 다른 라운지는 한달 방문 횟수가 제한돼 있지만 트리니티 라운지는 하루 1회 제한만 있고 몇 번을 가도 상관이 없습니다.
999명 찐부자들에게 제공하는 가장 큰 서비스는 ‘아무 때나 와도 번잡하지 않게 자신들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폐쇄적인 공간’이지 싶습니다.
트리니티 고객은 다이아몬드 퍼스트 라운지의 ‘프라이빗 룸’도 이용할 수 있습니다. 6인용 테이블이 놓인 회의실 같은 곳입니다. 5명을 동반할 수 있는데, 여기에서 비즈니스 회의를 할까요?
“이 등급 고객들은 보통 개인 집무실이 따로 있어서 비즈니스 회의를 할 필요가 없고 사교를 위한 공간으로 주로 쓴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슬세권’ 누리는 고소득 주민들과 윈윈?
신강의 또 다른 특징은 고소득 주민들의 거주지에 둘러싸여 있다는 점입니다. 반포 신축 아파트 단지는 신세계 강남점을 슬리퍼 신고 다닐 수 있는 이른바 ‘신강 슬세권’입니다.
“백화점에 멋지게 차려 입고 온 사람은 이 지역에 안 산다는 말이 있어요. 여기 주민들은 그냥 슬리퍼 신고 아무 때나 와서 빵이나 케이크 사가고 저녁 때 반찬이 없으면 지하 식품관 반찬 가게에 서둘러 가 파이널 세일하는 걸?가져가니까요.”(원베일리 주민 40대 김모씨)
김씨는 적어도 일주일에 세 번가량 신강을 방문합니다. 지인과의 모임, 부모님과의 식사도 대부분 여기서 해결합니다. 백화점은 고소득층인 동네 주민들의 소비력을 끌어모으고, 주민들은 명품부터 식품 구매까지 편하게 해결할 수 있는 ‘슬세권’의 이점을 톡톡히 누리는 거죠.
물론 저는 슬리퍼를 신고 가진 않아요. 대부분 걸어가요. 사야 할 게 많으면 차로 가는데 주차도 편하기 때문에 문제 없죠. 일단 카페나 먹거리 이런 게 잘 준비돼 있고, 다른 곳에 사는 친구들도 여기로 모이라고 하면 딱히 불만이 없어요. 오고 가기 편하니까요.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56880